글번호
85614
작성일
2019.10.23
수정일
2019.10.23
작성자
박물관
조회수
29

천문도(天文圖)


천문도(天文圖)는 왕조의 권위의 표상으로, 고대 왕조는 천체 관측 결과를 규격화하여 성도(星圖)를 작성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고구려가 처음으로 천문도를 석각(石刻)하였다고 전해진다. 그 인본(印本)이 고려를 거쳐 조선까지 계승되었다. 또 고구려의 고분벽화의 일월성진도(日月星辰圖)에 의해서도 고구려 천문학의 성좌에 대한 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 즉 3선으로 원들을 이어 나타낸 성좌(星座)와 함께, 태양을 동쪽에, 달을 서쪽에, 청룡 · 현무 · 백호 · 주작을 각기 4방위에 정확하게 그려놓았다는 것은 정확한 전체 관측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나타낸다.신라에는 효소왕 1년(692)에 도증(道證)이 당에서 가지고 온 천문도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백제인의 성좌에 대한 지식은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던 것으로 추측되나 역시 기록만이 전하고 있다. 고려시대의 천문학은 <고려사(高麗史)>에 오윤부(伍允孚)가 천문도를 작성하였다는 기록이 있을 뿐이다. 평양성에 있었던 고구려 천문도석본의 인본(印本)은 고려에 계승되었다.



천문도는 적도를 따라 12차(次)와 이에 대응하는 지역인 12분야(分野)에 따라 하늘의 형상을 늘어놓은 것이다. 북극을 중심으로 동그라미 안에 1464개의 별을 새겨 넣었으며 별자리마다 이름이 쓰여있다. 작은 원 안에는 24절기마다 저녁과 새벽에 남쪽에 위치하는 별자리가 있다. 북두칠성 등의 몇몇 별자리는 붉은 색으로 표시를 하였다



시대
조선시대후기
크기
66.5*64.5
등록번호
708
첨부파일
첨부파일이(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