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번호
85615
작성일
2019.10.23
수정일
2019.10.23
작성자
박물관
조회수
92

대천도(大天圖)


천문도(天文圖)는 왕조의 권위의 표상으로, 고대 왕조는 천체 관측 결과를 규격화하여 성도(星圖)를 작성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고구려가 처음으로 천문도를 석각(石刻)하였다고 전해진다. 그 인본(印本)이 고려를 거쳐 조선까지 계승되었다. 또 고구려의 고분벽화들의 일월성진도(日月星辰圖)에 의해서도 고구려 천문학의 성좌에 대한 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 즉 3선으로 원들을 이어 나타낸 성좌(星座)와 함께, 태양을 동쪽에, 달을 서쪽에, 청룡․현무․백호․주작을 각기 4방위에 정확하게 그려놓았다는 것은 정확한 전체 관측에 의하여 배치되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신라에는 효소왕(孝昭王)1년(692)에 도증(道證)이 당에서 돌아올 때 가지고 온 천문도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백제인의 성좌에 대한 지식은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던 것으로 추측되나 역시 기록만이 전해지고 있다. 고려시대의 성좌에 대한 지식 역시 『고려사(高麗史)』에는 오윤부(伍允孚)가 천문도를 작성하였다는 기록만이 있을 뿐이다. 평양성에 있었던 고구려 천문도 석본의 인본(印本)은 고려에 계승되었다. 조선왕조를 수립한 태조는 하늘의 뜻에 의하여 세워진 새 왕조의 왕자로서의 권위의 표상으로 새로운 천문도를 갖기를 염원했었다. 그것이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地圖)」(1395)라는 천문도 석본(石本)을 탄생시켰다. 이 천문도는 고려에 전해진 고구려 천문도를 바탕으로 교정하여 완성한 천문도이다. ‘천상열차분야지도’라는 이름은 숙종13년(1687)에 다시 새롭게 만든 석각천문도와 1770년(영조46)에 숙종 때의 석각천문도를 목판으로 인쇄하여 만든 천문도에도 붙어 있다.  한편 17세기 말 서양의 천문도가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오게 되면서 서양식이 가미된 새로운 천문도가 제작되었다. 그 중 영조18년(1742)에 제작된 신법천문도(新法天文圖)와 18세기의 혼천전도(渾天全圖), 1807년 황도중국합도(黃道中局合圖) 등이 대표적으로 여러 가지 이름의 관제 천문도가 인쇄, 보급되었다.




천상열차분야지도에는 석각본과 목판본이 전해지는데, 대천도의 별그림은 석각본의 형태를 따랐다. 그러나 새로운 이름과 걸맞게 주극원을 이중으로 그려 그 반을 갈색으로 칠하고 동그라미 둘레에 28수의 이름을 적었다. 상하단에 28수(宿)․12국분야(國分野)․일숙(日宿)․혼중성좌(昏中星座)․월숙(月宿) 등을 해설하였고, 외원(外圓)의 가장자리에는 12차(次)․12궁(宮)․12분야(分野) 등을 나타냈다. 이 천문도의 이름은 하단에 적혀있는데, 大와 天을 하나의 글자처럼 표기한 것이 특이하다.





시대
조선시대후기
크기
104.2*73.6
등록번호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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