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마끝 기와의 한쪽 끝에 둥글게 모양을 낸 부분으로, 원형 와당은 수키와에 달리고 반월형은 암키와에 달리며 사각형은 서까래 끝에 달게 된다. 중국 전국시대에 이미 반월형의 와당이 유행하였고 이어서 원형의 와당이 구워져 진나라에 이르러 크게 유행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와당은 삼국시대 초까지는 중국 와당의 모방에 그치고 있었으나 그 후 독자적으로 발전하게 된다. 고구려의 와당은 연꽃무늬를 새긴 것이 대표적인데 가장자리의 선이 강직하고 뚜렷하다. 백제의 와당도 연꽃무늬가 많으나 테두리가 고구려의 것보다 넓고 부드럽게 처리되었다. 신라의 와당도 초기에는 단순한 연꽃무늬의 와당이 많았으나 통일신라시대에는 연판이 이중으로 겹쳐지면서 매우 아름답게 처리된다. 그 문양도 매우 다양하게 발전하여 연판무늬를 비롯하여 초화(草花), 인동(忍冬), 도깨비, 사자(獅子), 보상화(寶相花), 사람얼굴무늬 등이 있다. 고려시대에 들어와서도 질이 점차 퇴화되자 도깨비, 봉황(鳳凰), 초화(草花)무늬 등 다양한 장식을 한 것들이 만들어지고, 조선시대에 들어서면 좀 더 소박해지고 단순화된다.
수막새 4점과 암막새 5점인 와당으로 출토지역과 문양이 다양하다. 우선 수막새는 연꽃무늬 바깥쪽은 연주문을 돌리고 안쪽에는 복엽의 연판이 새겨져 있다. 두 점의 상태는 양호하나 두 점은 훼손이 심하다. 암막새는 현태가 완전히 남아있지는 않으나 문양은 확실히 확인할 수 있다. 반달형 와전의 끝에 인동당초문이 눌러 찍혀있고, 만(卍)자문양이 찍힌 막새기와는 고려시대 전형적인 기와의 특징인 윌휘문(동그랗게 튀어나온 문양)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