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번호
85664
작성일
2019.10.23
수정일
2019.10.23
작성자
박물관
조회수
194

나막신( 木鞋 )

나막신( 木鞋 )


중국에서는 극(屐)이라 하였고, 한국에서는 격지, 목극, 각색, 목리, 목혜 등 부르다가 조선 말기부터 나막신이라 하였는데 '나무신'이 와전된 것이다. 처나막신은 주로 비올때 신는 신발로서 자연발생적인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고대에도 있었는지는 확증할 문헌이나 유물이 없고 조선 중기 이후에 많은 기록과 유물을 볼 수 있다. 나막신이 처음 나타났을 때의 형태를 알 수는 없으나 처음에는 평판에 끈을 하였던 것이 차츰 사방에 울을 하게 되고 굽을 달아 극의 형식으로 발달하여 요즈음 볼 수 있는 나막신으로 변하였다. 나막신은 1910년 이후 고문신이 등장하자 많은 사람들이 편리하고 질긴 고무신을 신게 되어 차츰 쇠퇴하여 1940년대를 전후하여서 거의 사라졌다.


나막신( 木鞋 )


나막신의 형태는 평극, 굽이 있는 것, 굽이 없는 것, 굽에 징이 박힌 것 등이 있었는데, 조선후기에는 남자아이가 신는 채극(彩屐) 등이 있었고 평극은 보이지 않는다. 재료는 다양하게 사용되었는데 오동나무와 버드나무로 만든 것을 제일로 쳤다. 나무의 속성이 마르면 터지기 쉬우므로 밀을 녹여 겉에다 칠해서 납극(蠟屐)을 만들어 신기도 하였다. 나막신은 상하,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모두 신었는데 굽이 높아서 비나 눈이 올때 좋으나 무겁고 활동적이 못되어 말을 탈때나 먼길을 갈때는 신지 않았다. 맑은 날에도 많이 신었으며 특히 어린 남자아이가 신었던 채극은 진신으로서뿐 만 아니라 마른신으로도 신었다.  이 나막신은 여자용으로 굽이 높으며 앞코에 꽃무늬가 음각으로 되어 있다.

시대
조선시대 말기
크기
7.4*24.5
등록번호
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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