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개요
인류는 오래전부터 자신이 살아가는 공간을 인식하고 기록하려는 지적 욕구를 지속적으로 표출해왔다. 선사시대 동굴 벽화나 암각화에 사냥터와 채집지를 표시한 행위가 기록의 시초로 볼 수 있다. 이는 생존을 위해 축적된 지식을 기록에 옮기는 실천적 행동이고, 공간 정보를 시각적으로 구조화한 가장 원초적인 지도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이후 지도는 인간의 활동 범위 확장과 더불어 점차 광범위한 세계를 포괄하게 되었다. 단순한 위치 표시 행위를 넘어, 당대의 지식과 권력, 그리고 세계관을 담는 복합적 매체로 발전한 것이다. 특히 세계지도는 각 시대와 문화권별로 인식한 세계의 모습을 시각적으로 재현한 결과물로서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고 체계화하려는 노력이 집약되어 있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위·경도 표시와 축적에 의한 계산을 적용하는 등 실제 지형에 가까운 지도를 만들고자 노력한 시대도 있었으며, 종교적 세계관에 따라 세계를 재구성한 시기도 있었다. 세계지도를 만들며 인간은 세계를 어떻게 상상하였고, 무엇을 통해 진실을 찾고자 하였으며, 어떠한 취사선택을 거쳐 기록했는지 과거 선인들의 시선을 따라가며 살펴보고자 한다.
조선이 세계를 보는 시선
세계가 조선을 보는 시선
모두 질서 아래 놓여 있다.
Exhibition
Overview
Humanity has long expressed a desire to understand and record the spaces in which it lives. The earliest examples of such efforts can be found in prehistoric cave paintings and petroglyphs depicting hunting grounds and gathering sites. These records were practical acts of preserving knowledge accumulated for survival and may be regarded as the most fundamental form of mapmaking—a visual organization of spatial information.
Over time, maps expanded alongside the widening scope of human activity, gradually encompassing a broader understanding of the world. They evolved beyond simple indicators of location into complex media that embodied the knowledge, power structures, and worldviews of their respective eras. World maps, in particular, are visual
representations of how different cultures and periods perceived the world, reflecting humanity’s enduring efforts to comprehend and systematize its surroundings.
Some periods sought to create maps that closely resembled actual geography through advances in science and technology, employing latitude, longitude, and scaled measurements. Other periods reconstructed the world according to religious beliefs and cosmological understandings. Through these world maps, this exhibition follows the perspectives of past generations, exploring how people imagined the world, what they regarded as truth, and how they selected and recorded knowledge within the medium of maps.
Joseon’s Perspective on the World
The World’s Perspective on Joseon
All Within the Order of the World
展览概况
人類自古以來便不斷展現出認識並記錄自身生活空間的求知欲。史前時代洞窟壁畫與岩刻畫中標示狩獵地與採集地的行為,可視為記錄活動的開端。這不僅是為了生存而將累積的知識加以保存的實踐行動,也可說是將空間資訊視覺化與結構化的最原始地圖表現形式。
隨著人類活動範圍的不斷擴展,地圖所涵蓋的世界也逐漸廣闊。地圖不再只是標示位置的工具,而發展成為承載當代知識、權力與世界觀的複合媒介。尤其是世界地圖,更是不同時代與文化圈對世界認知的視覺化成果,凝聚了人類理解世界並將其系統化的努力。
有些時代憑藉科學技術的發展,透過經緯度與比例尺的運用,力求繪製接近真實地理樣貌的地圖;也有些時代則依據宗教性的世界觀重新建構世界。透過這些世界地圖,本展覽將循著先人的視角,探尋人們如何想像世界、透過何種方式追求真實,以及如何選擇並記錄知識於地圖之中。
朝鮮眼中的世界
世界眼中的朝鮮
皆處秩序之中
展示概要
人類は古くから、自らが生きる空間を認識し、それを記録しようとする知的欲求を表してきた。先史時代の洞窟壁画や岩刻画に狩猟地や採集地が描かれた行為は、その最も早い記録の一つといえる。それは生存のために蓄積された知識を記録へと移し替える実践的な営みであり、空間情報を視覚的に構造化した最も原初的な地図表現でもあった。
その後、人類の活動範囲の拡大とともに、地図はより広大な世界を包含するようになった。単なる位置情報の表示を超え、当時の知識や権力、さらには世界観を映し出す複合的なメディアへと発展したのである。とりわけ世界地図は、それぞれの時代や文化圏が認識した世界像を視覚的に表現した成果であり、人類が世界を理解し体系化しようとした努力の結晶といえる。
科学技術の発展によって、経緯度や縮尺を用い、実際の地形に近い地図の作成を目指した時代もあれば、宗教的世界観に基づいて世界を再構成した時代もあった。本展では、こうした世界地図を通して、先人たちがどのように世界を想像し、何を真実として捉え、どのような選択のもとで地図という媒体に記録したのか、そのまなざしをたどっていく。
朝鮮が見た世界
世界が見た朝鮮
すべては秩序のもとに
프롤로그
천하는 매우 넓고, 나라의 크고 작음은 서로 다르나 모두 질서 아래 놓여 있다
세계世界라는 말은 하나의 의미로 고정되지 않는다. 지구 전체를 가리키는 물리적 공간에서부터, 개인의 마음속에 형성된 정신적 영역에 이르기까지 그 범주는 다양하게 확장된다. 인간은 눈으로 보이는 세계를 탐구하는 동시에, 보이지 않는 내면의 세계를 통해 대상을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해왔다. 이러한 인식의 틀을 ‘세계관世界觀’이라 부른다.
선인들의 사상이 담긴 다양한 기록물이 후대에 전해지고 있다. 특히 과거의 세계지도는 단순한 지리 정보의 기록을 넘어, 아직 경험하지 못한 공간에 대한 상상과 이해, 그리고 당대 사람들이 지닌 세계관이 함께 담겨있다. 실제로 발 딛고 살아가는 물리적 세계뿐 아니라, 미지의 세계에 대한 추정과 해석, 때로는 신념과 가치관까지 투영된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예로부터 군주는 국가의 세계관이 반영된 지도를 제작하고자 하였다. 이는 단순한 지리 파악을 넘어 세계 질서 속에서 자국의 위치를 확인하고 나아갈 방향성을 모색하기 위함이었다. 다시 말해, 세계관을 정립하고 이를 백성들에게 공유함으로써 국가의 정체성과 통치 질서를 공고히 하고자 한 것이다.
이 세계를 담아낸 지도는 비록 작은 형체에 불과하지만,
그 안에 담긴 세계가 얼마나 넓고 깊은지 헤아릴 수 없다.
작은 한 장의 지도 속에는 인간이 이해하고자 했던 세계와 그 너머를 향한
사유가 끝없이 펼쳐져 있다.
Prologue
The world under heaven is vast; though nations differ in size, all exist within an ordered harmony
The term “world” does not have a single fixed meaning. Its scope extends from the physical space of the entire globe to the inner realm formed within the human mind. While exploring the visible world, human beings have also interpreted and assigned meaning to their surroundings through the invisible world of thought and perception.
This framework of understanding is known as a “worldview.”
Various historical records reflecting the ideas and beliefs of past generations have been transmitted to the present day. Among them, historical world maps are more than mere records of geographical information. They embody contemporary understandings and imaginations of places yet to be experienced, while simultaneously reflecting the worldviews of the people who created them. Thus, maps portray not only the physical world inhabited by human beings, but also conjectures about unknown regions, interpretations of distant lands, and at times, the beliefs and values of their age.
For this reason, rulers throughout history sought to produce maps that reflected the worldview of their states. Such maps served purposes beyond geographical understanding; they were instruments for locating one’s country within the broader order of the world and for envisioning its future direction. In other words, by establishing and sharing a common worldview with their people, rulers sought to reinforce both the identity of the
state and the principles by which it was governed.
Though a map may appear to be no more than a small object,
it is impossible to measure the vastness and depth of the world contained within it.
Within a single sheet unfolds not only the world that humanity sought to understand,
but also an endless realm of thought reaching beyond the limits of the known.
前言
天下广大无垠,国家虽有大小之别,皆处于秩序之中
「世界」一詞並非具有固定而單一的含義。其範圍既可指整個地球的物理空間,也可延伸至個人內心所形成的精神領域。人類在探索可見世界的同時,也透過不可見的內在世界來理解事物並賦予其意義。這種認識世界的框架,稱為「世界觀」。
承載著先人思想與觀念的各類歷史文獻流傳至今。其中,古代世界地圖不僅是地理資訊的記錄,更蘊含著對未曾親歷之空間的想像與理解,以及當時人們所持有的世界觀。地圖所呈現的,不僅是人們實際生活其中的物理世界,也包含了對未知世界的推測與詮釋,甚至投射出特定時代的信念與價值觀。
正因如此,自古以來的統治者皆致力於繪製反映國家世界觀的地圖。其目的不僅在於掌握地理空間,更在於確認本國於世界秩序中的位置,並思考未來發展的方向。換言之,藉由建構並向臣民共享共同的世界觀,統治者得以鞏固國家的認同與統治秩序。
承載世界的地圖,雖不過是一方小小的形體,然而其中所蘊含的世界究竟何其廣闊、
何其深遠,實難以衡量。一幅小小的地圖之中,不僅展現了人類試圖理解的世界,
更承載著對未知彼岸無盡延伸的思索與想像。
プロローグ
天下は広大であり、国の大小はそれぞれ異なるが、すべては秩序のもとにある
「世界」という言葉は、一つの意味に固定されるものではない。その範囲は、地球全体を指す物理的空間から、人々の心の中に形成される精神的な領域にまで広がっている。人類は目に見える世界を探究する一方で、目に見えない内面的な世界を通して対象を理解し、意味を与えてきた。この認識の枠組みを「世界観」という。
先人たちの思想や価値観を伝えるさまざまな記録が今日まで受け継がれている。なかでも古地図や世界地図は、単なる地理情報の記録にとどまらず、未だ経験したことのない空間に対する想像や理解、そして当時の人々が抱いていた世界観を映し出している。そこには、人々が実際に暮らした物理的世界だけでなく、未知の世界に対する推測や解釈、ときには信念や価値観までもが投影されている。
このような理由から、古来より為政者たちは国家の世界観を反映した地図の制作を重視してきた。それは単に地理を把握するためではなく、世界秩序の中で自国の位置を確認し、進むべき方向を模索するためであった。言い換えれば、世界観を確立し、それを人々と共有することで、国家のアイデンティティと統治秩序を強化しようとしたのである。
世界を描いた地図は、たとえ小さな一枚の紙にすぎなくとも、
その中に収められた世界の広さと深さは計り知れない。
そこには、人々が理解しようとした世界だけでなく、
その先に広がる未知へと思索を巡らせた無限のまなざしが描き出されている。
넓다 넓어 조선이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
고조선에서 삼국시대에 이르기까지 외부 세계는 오늘날과 같은 ‘외국外國’의 개념보다는 ‘다른 부족’ 혹은 ‘다른 세력’으로 인식하였다. 고려 시대에는 주변 나라인 중국(당시 송·요·금·원·명), 일본 외에도 북방 민족, 동남아시아, 이슬람 국가와의 정치·군사·문화적 교류를 통해 국제 인식 이 형성되었다. 고려는 상대 국가를 하나의 체계적이고 독립된 정치 공동체로 인정하였고, 그 지 역의 제도, 풍속, 군사력 그리고 국제적 위상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기록에 남겼다. 이는 이전 시대와 달리 국가 대 국가로서의 ‘타국他國’ 인식이 성립되었음을 보여준다.
이후 조선 시대에 들어서면서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은 한층 더 체계화되었다. 특히 ‘외국’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서양 문명 등을 통해 접한 세계 인식을 나름의 방식으로 수용하는 과정이 조선의 지도에 잘 담겨 있다.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一疆理歷代國都之圖〉와 같은 지도에는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를 넘어 아라비아, 아프리카, 유럽까지 포괄한 지리 정보가 담겨 있다. 또한 각국의 위치뿐 아니라, 국가 간의 관계와 위계 질서까지 시각적으로 표현되었다.
문헌 기록 역시 마찬가지이다. 외국의 지리적 위치, 정치 체제, 문화와 풍속, 심지어는 사람들의 생활 모습까지 다양한 정보가 축적되었다. 이는 단순한 호기심이나 기록 차원을 넘어, 외국을 이해하고 분류하려는 학문적 태도의 반영이었다.
고지도를 통하여 조선의 세계 인식 변화를 살펴보는 과정은,
지금의 우리가 앞으로 넓혀 나갈 세상의 길라잡이가 될 것이다.
Wide, So Wide: Joseon’s Perspective on the World
From Gojoseon through the Three Kingdoms period, the outside world was perceived not as “foreign countries” in the modern sense, but rather as “other tribes” or “different powers”. During the Goryeo period, international awareness developed through political, military, and cultural exchanges with neighboring states such as China (Song, Liao, Jin, Yuan, and Ming), Japan, northern peoples, Southeast Asia, and the Islamic world.
Records left by Goryeo indicate that these counterparts were recognized as systematic and independent political communities, containing detailed information on their institutions, customs, military strength, and international standing. This demonstrates that, unlike earlier periods, an awareness of “other nations” as relationships between states had been established.
During the Joseon period, perceptions of the world became increasingly systematized. The term “foreign country” came into use, and efforts were made to understand and incorporate knowledge of regions beyond Joseon into broader worldviews. For example, maps such as Honil Gangni Yeokdae Gukdo Jido included geographical information extending beyond East Asia to Arabia, Africa, and even Europe. These maps not only represented Joseon’s own position but also visually expressed relations among states and the international order.
Written records likewise accumulated detailed information on foreign lands, including their geographical locations, political systems, cultures, customs, and even the daily lives of their people. This reflects not merely curiosity or documentation, but also a scholarly attitude of seeking to understand and classify foreign worlds.
By tracing Joseon’s changing perceptions of the world through old maps,
we may discover a guide to the broader world we are destined to shape ahead.
广阔无边:朝鲜看待世界的视角
从古朝鲜至三国时期,人们对于外部世界的认知并非今天“外国”的概念,而更多被视为“其他部族”或“其他势力”。进入高丽时期,通过与周边国家——中国(宋、辽、金、元、明)、日本、北方民族、东南亚及伊斯兰世界等进行政治、军事与文化交流,逐渐形成了国际认知。高丽留下的文献表明,当时已将这些国家视为独立且具有体系的政治共同体,并记录了其制度、风俗、军事力量及国际地位等具体信息。这说明与此前时期不同,当时已形成了以国家与国家关系为基础的“他国认知”。
进入朝鲜时期,对世界的认知进一步体系化。“外国”一词开始被使用,人们逐渐以自身方式接纳并理解朝鲜以外的世界。例如《混一疆理历代国都之图》等地图,其地理信息已超越东亚,扩展至阿拉伯、非洲乃至欧洲。这些地图不仅展现了本国的位置,也将国家间关系与世界秩序以视觉方式呈现出来。
文献记录亦是如此,其中详细记载了外国的地理位置、政治制度、文化风俗,甚至当地人民的生活样貌。这不仅体现了单纯的好奇心或记录行为,更反映出一种试图理解并分类外部世界的学术态度。
通过古地图回望朝鲜世界认知的变化,
或许能够成为引领我们迈向更广阔世界的方向标。
広く、広く ― 朝鮮が見た世界
古朝鮮から三国時代に至るまで、外部世界は今日のような「外国」という概念ではなく、「異なる部族」あるいは「異なる勢力」として認識されていた。高麗時代になると、中国(宋・遼・金・元・明)、日本、北方民族、東南アジア、イスラム世界などとの政治・軍事・文化交流を通じて、国際的な認識が形成されていった。高麗の記録によれば、それらの相手国は独立した政治共同体として認識され、その制度、風俗、軍事力、国際的地位に関する具体的な情報が記されている。これは、それ以前とは異なり、国家間関係としての「他国認識」が成立していたことを示している。
朝鮮時代に入ると、世界認識はさらに体系化された。「外国」という用語が用いられるようになり、朝鮮以外の世界についても独自の方法で理解し受容しようとした。例えば『混一疆理歴代国都之図』のような地図には、東アジアを越えてアラビア、アフリカ、ヨーロッパに至る地理情報が含まれている。また、これらの地図は自国の位置だけでなく、国家間の関係や世界秩序までも視覚的に表現している。
文献資料においても同様であり、外国の地理的位置、政治制度、文化や風俗、さらには人々の生活の様子まで詳細な情報が蓄積されている。これは単なる好奇心や記録の域を超え、外国を理解し分類しようとする学問的姿勢を反映したものである。
古地図を通して朝鮮の世界認識の変化を見つめることは、
これから私たちが切り拓いていく世界への道しるべとなるだろう。
타국 인식 정립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주변 국가들의 명칭이 비교적 정확하게 기재되어 있으나, 그 관계를 서술하는 방식에 있어서는 ‘적’, ‘오랑캐’, ‘여러 부족諸部’ 등의 표현이 주를 이룬다. 이는 당시 삼국이 주변 세력을 대등한 외교 주체로 인식하기보다는, 복속·정벌·방어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자국 중심적 세계관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국제 질서에 근거한 외교적 관계보다는 힘의 우열에 따른 권력 구조적 관계로 주변국을 인식하였음을 알 수 있다.
반면 고려 시대에 편찬된 《고려사高麗史》의 〈외국전外國傳〉에는 송·요·금·원·명 등 중국 왕조를 비롯하여 일본, 여진 등 주변 나라들의 정치 제도, 풍속, 군사력, 외교 관계 등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어있다. 이는 단순히 상대를 적이나 이민족으로 규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각각의 고유한 체제와 문화를 지닌 독립된 정치 공동체로 인식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변화는 고려가 다원적 국제질서 속에서 실질적인 외교 관계를 맺어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타국 인식의 성숙을 반영
하였다고 할 수 있다.
나아가 ‘고려高麗’라는 이름이 아라비아 상인과 이슬람 세계를 통해 국제적으로 알려지며 오늘날 ‘Korea’의 어원이 되었다는 사실은, 고려가 단순히 주변을 관찰하는 데 머물지 않고 외부 세계와 실질적으로 교류하였음을 보여 준다. 이러한 타국 인식의 성숙은 이후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와 같은 세계지도 제작의 지적 토대가 되었으며, 조선이 더 넓은 세계를 지도 위에 체계적으로 담아낼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였다.
세계 인식 확장과 축소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이르는 시기는 세계에 대한 지식이 크게 확장되던 시기였다. 조선은 건국 이전부터 중국과의 교류뿐만 아니라 몽골 제국이 구축한 광범위한 교류망을 통해 서역의 지리 정보와 다양한 세계 인식을 접할 수 있었다. 이러한 지식은 중국에 유입된 이슬람계 지리 정보와 결합되어 동아시아의 세계 이해를 한층 넓혀 주었다.
1402년(태종 2)에 제작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는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탄생한 세계지도이다. 지도에는 조선과 중국, 일본은 물론 중앙아시아, 아라비아, 아프리카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이 함께 표현되어 있다. 특히 아프리카와 유럽에 대한 정보가 수록된 점은 당시 조선이 인식하던 세계의 범위가 동아시아에만 머물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동쪽에 조선과 일본을, 서쪽에 아프리카와 유럽을, 그리고 그 사이에 중국을 배치함으로써 당시습득된 세계의 지리 정보를 한 화면 안에 종합적으로 담아내는 데 목적을 두었다. 특히 이전에는 볼수 없었던 100여개의 지명이 표기된 유럽 지역, 35개의 지명이 표기된 아프리카 지역을 포괄하고 있다는 사실은 선대와 달리 주변지역의 객관적 실재를 인정하고 이들의 가치를 적극적으로 이해하려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는 조선이 세계와 단절된 공간이 아니라 다양한 경로를 통해 새로운 지식을 수용하고 기록하였음을 보여주는 자료이다. 또한 조선 초기 사람들이 자신들이 살아가는 세계의 범위를 어디까지 인식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이기도 하다.
15세기와 16세기 조선의 세계 인식은 지도 제작 양상과 대외 관계의 변화 속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13-14세기 몽골족이 건국한 원元은 유라시아 전역을 포괄하는 광대한 제국을 형성하며 이슬람 세계 및 서방과의 교류를 활성화하였다. 이 과정에서 축적된 지리 지식과 이슬람계 세계지도 양식은 동아시아에도 유입되었고, 이러한 국제적 지식 교류의 성과는 1402년(태종 2)에 제작된 세계지도인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에 집약적으로 반영되었다.
반면 16세기에 이르면 조선의 세계 인식은 점차 축소되고 경직된 양상을 보인다. 명明이 중원을 지배하면서 대외 질서는 조공·책봉 체제 중심으로 재편되었고, 서역 및 이슬람 세계와의 간접 교류 역시 현저히 약화되었다. 이에 따라 조선이 접할 수 있는 외부 세계 정보의 범위도 제한되었으며, 지도 제작에 반영되는 지리 정보 역시 축소되는 경향을 보인다. 16세기 지도에서는 이전 시기 지도에 나타났던 유럽과 아프리카에 대한 인식이 점차 생략되고, 대신 중국과 그 주변 조공국을 중심으로 한 ‘직방職方적 세계관’이 강화된다. 이는 단순한 지식의 후퇴라기보다는, 동아시아 국제 질서 속에서 실질적 외교와 교역의 범위가 제한되었던 사회·정치적 환경이 지도 표현에 반영된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
결국 조선 전기에서 중기로 이어지는 세계지도 변화는 외부 세계에 대한 인식의 확장과 축소라는 단선적 흐름이 아니라, 국제 교류망의 밀도와 성격, 그리고 조선이 속한 질서 구조의 변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 할 수 있다.
16세기 조선은 주자성리학의 체계적 정립과 함께 독자적인 대외 인식을 구축해 나갔다. 이 시기 조선 지식인들은 단순히 외부 세계를 관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유교적 세계 질서 속에서 자국의 위치와 역할을 능동적으로 사유하기 시작하였다. 명明을 중화中華의 중심으로, 조선을 소중화小中華로 자리매김하는 인식은 이러한 사유의 산물이었으며, 명과의 관계는 단순한 힘의 비대칭이 아니라 유교적 윤리에 입각한 질서 구조로 이해되었다.
이와 같은 인식은 때로 사대事大를 외교적 수단을 넘어 그 자체로 가치 있는 실천으로 여기는 방향으로 심화되기도 하였다. 이를 두고 15세기의 조선 중심적 자의식에서 후퇴한 것으로 평가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조선이 유교 문명을 단순히 수용하는 데 머물지 않고 그것을 내면의 규범으로 정착시켜 문화적 자존의식의 성숙을 이룬 것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즉, 16세기 소중화 의식은 조선이 유교적 세계관을 내재화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정체성과 위상을 재정립하려 한 시도였다.
원형천하도
조선은 임진왜란1592-1598과 병자호란1636-1637을 연이어 겪으며 국제 질서의 급격한 변동을 경험하였다. 명明이 쇠퇴하고 청淸이 중원을 장악하는 격동 속에서, 조선 지식인들은 변화하는 현실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것인가를 고민하였다. 원형천하도圓形天下圖는 바로 그러한 시대적 긴장 속에서 제작된 세계 인식의 기록이다.
원형천하도는 원형의 동심원 구조를 기본 틀로 삼아, 중심부에 중국을 배치하고 그 바깥으로 내대륙內大陸, 내해內海, 외대륙外大陸, 외해外海를 순차적으로 배열하는 우주론적 구성을 취한다. 이는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전통적 우주관을 시각화한 것으로, 지리적 실측보다는 세계의 구조와 질서를 관념적으로 표현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지도에 표기된 지명들 역시 실재하는 지역과 신화적·허구적 지명이 혼재하며, 지리적 정확성보다는 세계 인식의 구조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곤여만국전도坤輿萬國全圖〉를 대표로 하는 서양 지리학적 세계관이 유입되던 시기에, 전혀 다른 원리로 구성된 원형천하도가 등장하여 민간에서 필사본의 형태로 광범위하게 유통되었다. 이는 새로운 지리 지식을 수용하면서도 전통적 세계 인식의 틀을 포기하지 않으려 했던 조선 사회 내부의 지적 긴장과 선택적 수용의 양상을 반영한다. 즉, 원형천하도의 확산은 외래의 지리 지식에 대한 무지의 소산이 아니라, 중화적 질서관과 전통 우주론을 의식적으로 재확인하려는 문화적 대응의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 결국 원형천하도는 17세기 조선 사회가 처한 복합적 현실, 즉 명·청 교체라는 정치적 격변, 서양 지리 지식의 유입이라는 지적 충격, 그리고 중화적 세계관의 내면화라는 문화적 선택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탄생한 지적 산물이다. 이 지도는 지리적 사실의 기록이라는 차원을 넘어, 당대 조선 사회가 세계를 어떻게 인식하고 어떠한 방식으로 질서화하려 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료로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불교적 세계관 지도
고려 시대까지 불교는 대표적인 종교로서 사회 다방면에 걸쳐 깊은 영향을 미쳤다. 불교적 세계관을 반영한 지도 역시 활발히 제작되었으나, 조선 시대에 들어서면서 유교가 사회 운영의 근본 원리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에 따라 불교는 상대적으로 위축되었고 불교적 세계관을 표현한 지도 제작 또한 매우 드물었다. 불교적 세계인식에 입각한 지도에는 인도가 중앙에 위치하고 동쪽에 아시아가 표현되어 있다.
서구식 지도학이 반영된 지도
서구식 세계지도는 예수회 선교사 마테오 리치Matteo Ricci, 1552-1610가 1582년 중국에 도착하면서 본격적으로 제작되기 시작하였다. 마테오 리치는 서양의 과학지식과 천주교 교리를 담은 한역서학서 간행과 함께 중국의 전통적 세계관 속에 서양식 지리 지식을 접목한 세계지도 제작에 힘썼다.
1584년 최초의 판본인 〈산해여지도山海輿地圖〉를 시작으로 무려 십여 종에 달하는 세계지도를 간행하였다. 그 중 1602년 〈곤여만국전도坤輿萬國全圖〉가 가장 널리 알려져 있으며, 이 지도는 유럽·아프리카·아메리카 대륙과 경위선, 지구 구형 개념, 천문·역법 정보 등이 표현되어 기존의 천하관과는 다른 새로운 세계상을 보여주었다. 이 지도는 대형 병풍 형태뿐만 아니라 《삼재도회三才圖會》·《도서편圖書編》·《방여승략方輿勝略》 등 여러 서적 속 축소본으로도 제작되어 널리 유통되었다.
마테오 리치 사후에도 알레니Giulio Aleni, 1582-1649의 《직방외기職方外紀》(1623), 아담 샬Adam Schall, 1592-1666의 《혼천의설渾天儀設》(1636), 페르비스트Ferdiand Verbiest, 1623-1688의 〈곤여전도坤輿全圖〉(1674) 등 선교사들에 의한 서구식 세계지도 제작이 이어졌다.
중국에서 서양 선교사들이 제작한 서구식 세계지도는 청나라에 다녀온 사신과 수행원들에 의해 서학서와 함께 조선으로 유입되었다. 1603년 이광정李光庭, 1552-1627과 권희權憘, 1547-1624가 최초로 〈구라파국여지도歐羅巴國輿地圖〉 6폭을 들여온 것이 시초로 알려져 있으며, 이후 허균許筠, 1569-1618, 정두원鄭斗源, 1581-? 등이 마테오 리치의 지도와 《직방외기》, 〈만리전도萬里全圖〉 등을 가져왔다.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간 소현세자昭顯世子, 1612-1645도 아담 샬과 교류하며 서학 서적과 문물을 접했고, 이를 조선에 가져오면서 조선 사회가 서양 문물을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우러러 천문天文을 보고, 굽어 지리地理를 살핀다
《주역周易》 〈계사전繫辭傳〉 상편
천문天文은 지리와 더불어 국가를 경영하는 데 핵심적인 학문으로 중시되었다. 천체의 운행을 바탕으로 정확한 역법曆法을 제작하는 것은 농경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었으며, 절기의 변화와 기상 현상을 예측하여 백성들의 농업 활동과 생활을 안정시키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왕립 천문관측기관을 설치하고, 천문대와 다양한 관측기기를 개발하여 천상과 기상의 변화를 체계적으로 살폈다.
조선 시대에는 서운관書雲觀(후에 관상감觀象監으로 개칭)이 천문·역법·기상을 전담하는 국가 기관으로 운영되었다. 세종 대에는 혼천의渾天儀·간의簡儀·앙부일구仰釜日晷·자격루自擊漏 등 다양한 천문관측기기와 시간 측정기기가 제작되며 천문학이 크게 발전하였다.
이와 같은 천문 지식은 단순히 별을 관측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세계를 이해하고 통치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수단으로 기능하였다. 조선의 왕이 하늘의 뜻을 헤아려 역을 반포하고 절기를 선포하는 행위는 세계의 질서를 주재하는 군주로서의 권위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천문도와 세계지도는 서로 다른 대상을 담고 있지만, 모두 ‘질서 아래 놓인 세계’를 시각화하려는 지적 의지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깊다 깊어
세계가 조선을 바라보는 시선
세계가 바라본 조선의 모습은 외교와 교류, 발걸음과 기록을 따라 만들어졌다. 공식적인 외교 사절로서 중국과 일본으로 향한 사신들은 조선의 문물과 문화를 세계에 보여주었다. 마찬가지로 외교를 위하여 조선에 방문한 외국의 사신, 서양의 선교사들, 또는 예상치 못한 풍랑에 떠밀려 낯선 조선 땅에 이르게 된 이방인들은 자신들이 경험한 조선의 자연과 지리, 사회 질서와 통
치 체계, 일상 속 문화를 글과 그림으로 남기고자 했다. 이러한 기록은 세계로 전해져 조선을 이해하는 중요한 자료가 되었으며, 조선은 점차 두렵거나 미지의 땅이 아니라 독자적인 문화와 질서를 갖춘 나라로 인식되었다.
서양의 지도 위에 미지의 땅이었던 조선의 이름이 새겨지고, 그 윤곽이 점차 실제 모습에 가까워지는 과정 역시 외교와 표류, 기록을 통한 교류의 결과였다. 세계를 향해 나아간 사람들의 경험과 시선, 그리고 타국을 이해하려 했던 노력을 통해 세계가 점차 조선을 알게 되고, 지도와 기록에 남겨져 오늘날까지 전해진 것이다. 과거 사람들이 세계를 바라보았던 다양한 시선과 만남의 흔적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의 세계 또한 끊임없는 교류와 이해 속에서 만들
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낯선 세계를 향해 나아간 발걸음은 길이 되었고,
길 위에서 만난 세계는 다시 지도 속에 새롭게 그려졌다.
작은 종이 한 장에는 서로를 이해하려 했던 시선과 경험,
그리고 더 넓은 세계를 향한 인간의 호기심이 함께 담겨 있다.
Deep, So Deep: The World’s Perspective on Joseon
The image of Joseon as seen by the world was shaped through diplomacy and exchange, through journeys and records. As official diplomatic envoys, the envoys who traveled to China and Japan presented the civilization and culture of Joseon to the world. Likewise, foreign envoys who visited Joseon for diplomatic purposes, western missionaries, and foreigners who arrived in the unfamiliar land of Joseon after being driven by unexpected storms sought to leave written and illustrated records of the nature and geography, social order and governing system, and everyday culture of Joseon as they experienced them. These records spread throughout the world and became important sources for understanding Joseon, and Joseon gradually came to be recognized not as a fearful or unknown land, but as a country with its own distinctive culture and order.
The process by which the name of Joseon, once an unknown land on Western maps, came to be inscribed on them, and by which its outline gradually approached its actual form, was likewise the result of exchanges through diplomacy, drifting, and recordkeeping.
Through the experiences and perspectives of those who ventured out into the world, and through efforts to understand foreign lands, the world gradually came to know Joseon, and it was preserved in maps and records and passed down to the present day. By following the traces of the diverse perspectives and encounters through which people of the past viewed the world, we can see that the world in which we live today has also been shaped through continuous exchange and understanding.
The steps taken toward unfamiliar worlds became pathways,
and the worlds encountered along those paths were newly drawn once again
onto maps. Within a single sheet of paper are preserved the perspectives and
experiences through which people sought to understand one another,
together with humanity’s enduring curiosity toward a broader world.
深邃悠远:世界看待朝鲜的视角
世界眼中的朝鲜,是通过外交与交流、足迹与记录而形成的。作为正式外交使节前往中国和日本的朝鲜使臣,向世界展示了朝鲜的文物与文化。同样,因外交而访问朝鲜的外国使节、西方传教士,以及因意外风暴而漂流至陌生朝鲜土地的异乡人,试图以文字和图画记录他们所经历的朝鲜的自然与地理、社会秩序与统治体系,以及日常生活中的文化。这些记录传播到世界各地,成为了解朝鲜的重要资料,而朝鲜也逐渐不再被视为令人畏惧或未知的土地,而是被认识为一个拥有独特文化与秩序的国家。曾经作为西方地图上未知之地的朝鲜,其名称被标注于地图之上,其轮廓逐渐接近真实面貌的过程,同样也是通过外交、漂流与记录所形成交流的结果。通过走向世界的人们的经历与视角,以及试图理解异国的努力,世界逐渐认识了朝鲜,而这些认识被保存在地图与记录之中,并流传至今。循着过去人们观察世界时留下的多样视角与相遇痕迹,我们也能够认识到,我们今天所生活的世界,同样是在不断的交流与理解之中形成的。
迈向陌生世界的脚步最终成为道路,
而在道路上所遇见的世界,又重新被描绘进地图之中。
一张小小的纸上,承载着人们试图相互理解的视角与经验,
以及人类对更广阔世界始终不变的好奇心。
深く、深く ― 世界が見た朝鮮
世界が見た朝鮮の姿は、外交と交流、人々の足跡と記録によって形づくられた。正式な外交使節として中国や日本へ向かった使臣たちは、朝鮮の文物と文化を世界に示した。外交のために朝鮮を訪れた外国の使臣たち、西洋の宣教師たち、あるいは予期せぬ暴風によって見知らぬ朝鮮の地へたどり着いた異邦人たちは、自らが経験した朝鮮の自然と地理、社会秩序と統治体制、日常の文化を文章や絵として残そうとした。こうした記録は世界へ伝わり、朝鮮を理解するための重要な資料となった。そして朝鮮は次第に、恐ろしい未知の土地ではなく、独自の文化と秩序を備えた国として認識されるよ
うになった。
西洋の地図の上で未知の土地であった朝鮮の名が記され、その輪郭が次第に実際の姿に近づいていく過程もまた、外交や漂流、記録を通じた交流の結果であった。世界へ向かった人々の経験と視線、そして他国を理解しようとした努力を通じて、世界は次第に朝鮮を知るようになり、その姿は地図や記録に残されて今日まで伝えられている。過去の人々が世界を見つめた多様な視線と出会いの痕跡をたどるとき、私たちはまた、自らが生きる今日の世界も絶え間ない交流と理解の中で形づくられていることを知ることができる。
見知らぬ世界へ向かった足跡は道となり、
その道で出会った世界は再び新たな姿で地図の中に描かれた。
一枚の小さな紙の上には、人々が互いを理解しようとした視線と経験、
そしてより広い世界へ向けられた人類の尽きることのない好奇心が込められている。
지도에서 이어진 외교의 길
지도에 그려진 세계를 따라 조선은 땅과 바다를 건너 나아갔다. 조선은 사대교린事大交隣이라는 외교 원칙을 바탕으로 주변 나라들과 관계를 맺으며 국가의 안정을 도모하였다. 변화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원활한 외교 관계를 이어가기 위해 조선은 외교와 의례에 관한 절차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기록으로 남겼다. 이러한 외교서는 사신의 역할과 의례의 순서, 외교 절차 등을 구체적으로 규정하며 조선과 타국 간 교류의 기준이 되었다.
조선의 사신단에게 수천 리에 이르는 사행길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었다. 그들은 육로와 바닷길을 따라 낯선 지역을 지나며 새로운 풍경과 문물을 접하였고, 이를 글과 그림으로 기록하여 외국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고자 했다. 또한 시문과 필담을 통해 상대국의 지식인들과 교류하며 지식을 나누고 서로를 알아갔다. 사행 과정에서 보고 듣고 경험한 세계는 조선의 시야를 넓히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이처럼 사신들의 왕래는 사람과 물자뿐만 아니라 지식과 정보가 오가는 통로이기도 하였다. 외교와 교류를 통해 축적된 경험은 지도와 문헌, 회화에 기록되어 세계에 대한 이해를 넓혀 주었다. 지도위에 그려진 세계는 실제 경험과 만남을 통해 더욱 구체적인 모습으로 채워졌으며, 그 과정에서 남겨진 기록들은 조선이 세계와 관계를 맺고 이해하고자 한 흔적으로 남게 되었다.
통신사 사행 복식
조선에서 일본으로 파견한 통신사 사행 인원은 크게 사절단을 대표하는 사신使臣 3인(정사正使·부사副使·종사관從事官)과 여러 원역員役·군관 등으로 구성된다. 이들은 사행 일정 중 상황과 의례의 성격에 따라 복식을 달리 착용하였다. 장거리 이동 시에는 도포·창의 등의 편복을 입었으며, 행렬·의례·연향과 같은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신분과 직분에 따라 조복·흑단령·시복 단령, 융복 등을 구분하여 사용했다. 이 가운데 조복은 사신만 착용할 수 있었고, 사신이 조복을 입는 상황에서 그 이하 원역은 단령을 착용하였다.
사로승구도에 묘사된 간바쿠의 잔치關白讌享는 에도에서 조선 국왕의 국서를 전달하는 전명의傳命儀 장면이다. 화면에서는 세 사신이 조복을 착용하고 있으며, 나머지 관리들은 흑단령, 군관들은 융복을 입은 모습이 세밀하게 표현되어 있다. 이를 통해 통신사 사행에서 신분과 직분에 따라 복식을 엄격하게 구분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18-19세기 여러 사행 기록을 통해서도 전명의에서 사신은 금관조복, 원역은 흑단령, 군관은 융복을 착용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17세기 중반 효종 대 이후 4품 이상은 조복, 5품 이하는 흑단령을 착용하도록 한 제도가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특히 사행 인원 가운데 사신 3인 외에도 4품 이상의 관원이 포함되어 있었음에도 조복 착용이 사신에게만 한정된 점은, 다른 사행 인원과 구별되는 사신의 권위와 위엄을 강조하기 위한 조치로 이해할 수 있다.
경계 너머에서 바라본 조선
조선과 세계의 만남은 사절단의 왕래를 비롯한 공식 외교에만 머물지 않았다. 예상치 못한 표류와 항해, 상업 활동, 종교와 학문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교류하였다. 낯선 바다를 떠돌다 조선에 이르게 된 이방인들은 조선의 사회와 문화,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직접 경험하였고, 이를 기록으로 남겼다.
반대로 조선인들 또한 외부 세계를 접하며 새로운 지식과 세계 인식을 넓혀 나갔다. 특히 17세기 이후 해상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조선에 대한 정보는 점차 동아시아를 넘어 서양 세계에도 전해지기 시작하였다. 네덜란드인 하멜Hendrik Hamel, 1630-1692의 표류 경험과 서양 선교사들의 기록, 중국을 통해 전해진 지리 지식 등은 조선을 소개하는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 이러한 기록들은 단순한 여행담이나 경험의 축적이 아니라, 세계가 조선을 이해하는 하나의 창이 되었다. 조선의 이름은 서양의 지도 위에 새겨지기 시작했고, 섬으로 그려지는 등 불분명했던 형태도 점차 실제의 반도 지형에 가까워졌다. 타국에서 만들어진 지도에 담긴 조선의 모습은 세계가 조선을 바라본 시선의 흔적이자, 동시에 조선이 세계와 연결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서양 지도에 그려진 조선
지도는 당대 사람들이 알고 있던 타국에 대한 지식을 모아 만든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조선과 멀리 떨어진 서양에서도 직·간접적인 교류를 통해 조선에 대한 이미지를 형성해 왔으며, 이러한 인식은 지도를 통해 드러났다. 서양의 옛 지도에 표현된 조선의 모습과 명칭이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과정은 세계가 조선을 이해했던 흐름을 보여준다.
16세기 중반까지 서양에는 조선의 존재가 잘 알려지지 않아 지도에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16세기 후반에 들어 동아시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중국과 일본 사이에 ‘조선’이라는 나라가 있다는 사실이 인식되었고, 점차 지도에 그려지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는 조선을 하나의 독립된 나라가 아닌 지역으로 기록하거나 섬 또는 길게 뻗은 반도, 해안의 일부처럼 표현하기도 했다. 18세기에 이르러 서양인들의 조선에 대한 이해는 한층 구체적으로 발전하면서 지도에도 비교적 정확한 형태로 나타나게 되었다. 세계는 조선을 기록하였고, 그 기록은 또 다른 만남의 시작이 되었다.
에필로그
드넓은 세상, 우리이기에 가능하고 우리이기에 당연하다
인간은 오래전부터 자신이 살아가는 세계를 이해하고자 하였다. 보이지 않는 세계를 상상하고, 미지의 땅을 기록하며, 낯선 존재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시대마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이어져 왔다. 지도 한 장에는 단순한 지리 정보만이 아니라, 그 시대 사람들이 세상을 바라보던 눈길과 태도가 함께 담겨있었다. 조선 또한 세계와 단절된 공간이 아니었다. 선인들은 교류와 외교 활동을 통해 얻은 지식을 지도와 문헌에 담아내며, 세계 속에서 우리의 위치를 끊임없이 고민하였다. 때로는 실제보다 크게, 때로는 낯선 상상으로 채워진 그 지도들은 단순한 오류가 아니라, 세상을 알고 세계 속 자신만의 질서를 만들어 나간 것이다.
오늘날 세계 속 대한민국의 모습은 어느 날 갑자기 이루어진 결과가 아니다. 옛 지도를 그리던 선인들이 그랬듯, 세대를 이어 시선을 넓히고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이며 자신만의 가치를 만들어 온 오랜 시간의 축적이 만든 결과물이다.
세계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 또한 계속 넓어질 것이다. 그러나 세상을 이해하고 서로를 마주하려는 태도만큼은 지금 이 자리에 펼쳐진 오래된 지도들을 그린 사람들의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한 장의 지도 위에 담았던 세계를 향한 시선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과거 사람들이 바라본 세계가 담긴 지도는 끝난 이야기가 아니다.
옛 지도에 담긴 세계를 향한 시선은 지금도 우리가 지도를 펼쳐
더 넓은 세계를 향해 나아가게 한다.
Epilogue
A Boundless World — Possible Because of Us, and Natural to Us
Since ancient times, humanity has sought to understand the world in which it lives. The desire to imagine unseen realms, record unknown lands, and comprehend unfamiliar peoples has taken different forms throughout history. Maps reflected not only geographical knowledge, but also the ways people viewed and interpreted the world around them.
Joseon was never isolated from the wider world. Through exchange and diplomacy, its people gathered knowledge and recorded it in maps and texts, continually reflecting on their place within the world. Whether based on observation or imagination, these maps were not merely inaccuracies, but efforts to understand the world and establish a meaningful order within it.
The Republic of Korea’s place in the world today is the result of generations who broadened their horizons, embraced new knowledge, and created their own values. It is the product of a long history of curiosity, learning, and engagement with the wider world.
The world continues to change, and our understanding of it continues to expand. Yet the desire to understand the world and connect with others remains much the same. The vision captured by the makers of these old maps still resonates with us today.
The maps that contain how people of the past viewed the world are not stories
that have come to an end. The perspectives on the world embodied in old maps
still inspire us to unfold our maps and set out toward a wider world.
结语
辽阔天地,因我们而成就,因我们而延续
自古以来,人类始终试图理解自己所生活的世界。想象不可见的天地,记录未知的土地,理解陌生的存在——这样的探索在不同时代以不同的方式延续至今。一幅地图所承载的,不仅是地理信息,更蕴含着那个时代人们观察世界的目光与态度。
朝鲜王朝也并非与世界隔绝的空间。先人们通过交流与外交活动获得知识,并将其记录于地图与文献之中,不断思考自己在世界中的位置。有些地图将某些地域描绘得超乎实际大小,有些则充满了对未知世界的想象。然而,这些并非单纯的错误,而是人们试图认识世界、并在世界之中建立自身秩序的努力与成果。
今天大韩民国在世界舞台上的地位,并非一朝一夕形成。正如昔日绘制地图的先人们不断拓展视野、吸收新知一样,一代又一代的人持续开阔眼界、接纳新的知识,并创造属于自己的价值。今日的成就,正是这种长期积累的结果。
世界始终在不断变化,我们所认识的世界也将不断拓展。然而,理解世界、面对彼此的态度,与这些古地图绘制者当年的初心并无二致。他们曾倾注于一幅地图中的世界视野,至今依然延续在我们身上。
承载着过去人们如何看待世界的地图,并不是已经结束的故事。
古地图中蕴含的面向世界的目光,至今仍促使我们展开地图,迈向更加广阔的世界。
エピローグ
広がる世界 ― 私たちだからこそ実現し、私たちだからこそ受け継がれる
人類は古くから、自らが生きる世界を理解しようとしてきた。目に見えない世界を想像し、未知の土地を記録し、見知らぬ存在を理解しようとする営みは、時代ごとに異なるかたちを取りながら受け継がれてきた。一枚の地図には、単なる地理情報だけでなく、その時代の人々が世界を見つめたまなざしと姿勢が込められている。
朝鮮もまた、世界から隔絶された存在ではなかった。先人たちは交流や外交を通じて得た知識を地図や文献に記録し、世界の中における自らの位置を絶えず考え続けた。実際より大きく描かれた土地もあれば、未知への想像に満ちた表現もあったが、それらは単なる誤りではない。世界を理解し、その中で自らの秩序を築こうとした人々の試みそのものであった。
今日、世界の中での大韓民国の姿は、一朝一夕に築かれたものではない。かつて地図を描いた先人たちがそうであったように、世代を超えて視野を広げ、新たな知識を受け入れ、自らの価値を育み続けてきた長い積み重ねの結果である。
世界は絶えず変化し、私たちが見つめる世界もまた、さらに広がり続けるだろう。しかし、世界を理解し、互いに向き合おうとする姿勢は、ここに展示された古地図を描いた人々の思いと大きく変わらない。彼らが一枚の地図に託した世界へのまなざしは、今日の私たちにもなお受け継がれているの
である。
過去の人々が世界をどのように見つめていたかを伝える地図は、終わった物語ではない。
古地図に込められた世界へ向けるまなざしは、今もなお、私たちに地図を広げ、
より広い世界へと歩み出すことを促してい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