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지리 고미술 복식 근현대미술 자연사표본 천문지리·天文地理 Astronomy/Geography fnctId=bbs,fnctNo=4171 21 건 게시물 검색 제목 작성자 공통(상단고정) 공지 게시글 게시글 리스트 대천도(大天圖) 작성자 박물관 시대 조선시대후기 크기 104.2*73.6 등록번호 1045 조회 1857 첨부파일 0 작성일 2019.10.23 천문도(天文圖)는 왕조의 권위의 표상으로, 고대 왕조는 천체 관측 결과를 규격화하여 성도(星圖)를 작성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고구려가 처음으로 천문도를 석각(石刻)하였다고 전해진다. 그 인본(印本)이 고려를 거쳐 조선까지 계승되었다. 또 고구려의 고분벽화들의 일월성진도(日月星辰圖)에 의해서도 고구려 천문학의 성좌에 대한 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 즉 3선으로 원들을 이어 나타낸 성좌(星座)와 함께, 태양을 동쪽에, 달을 서쪽에, 청룡․현무․백호․주작을 각기 4방위에 정확하게 그려놓았다는 것은 정확한 전체 관측에 의하여 배치되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신라에는 효소왕(孝昭王)1년(692)에 도증(道證)이 당에서 돌아올 때 가지고 온 천문도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백제인의 성좌에 대한 지식은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던 것으로 추측되나 역시 기록만이 전해지고 있다. 고려시대의 성좌에 대한 지식 역시 『고려사(高麗史)』에는 오윤부(伍允孚)가 천문도를 작성하였다는 기록만이 있을 뿐이다. 평양성에 있었던 고구려 천문도 석본의 인본(印本)은 고려에 계승되었다. 조선왕조를 수립한 태조는 하늘의 뜻에 의하여 세워진 새 왕조의 왕자로서의 권위의 표상으로 새로운 천문도를 갖기를 염원했었다. 그것이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地圖)」(1395)라는 천문도 석본(石本)을 탄생시켰다. 이 천문도는 고려에 전해진 고구려 천문도를 바탕으로 교정하여 완성한 천문도이다. 천상열차분야지도 라는 이름은 숙종13년(1687)에 다시 새롭게 만든 석각천문도와 1770년(영조46)에 숙종 때의 석각천문도를 목판으로 인쇄하여 만든 천문도에도 붙어 있다. 한편 17세기 말 서양의 천문도가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오게 되면서 서양식이 가미된 새로운 천문도가 제작되었다. 그 중 영조18년(1742)에 제작된 신법천문도(新法天文圖)와 18세기의 혼천전도(渾天全圖), 1807년 황도중국합도(黃道中局合圖) 등이 대표적으로 여러 가지 이름의 관제 천문도가 인쇄, 보급되었다.천상열차분야지도에는 석각본과 목판본이 전해지는데, 대천도의 별그림은 석각본의 형태를 따랐다. 그러나 새로운 이름과 걸맞게 주극원을 이중으로 그려 그 반을 갈색으로 칠하고 동그라미 둘레에 28수의 이름을 적었다. 상하단에 28수(宿)․12국분야(國分野)․일숙(日宿)․혼중성좌(昏中星座)․월숙(月宿) 등을 해설하였고, 외원(外圓)의 가장자리에는 12차(次)․12궁(宮)․12분야(分野) 등을 나타냈다. 이 천문도의 이름은 하단에 적혀있는데, 大와 天을 하나의 글자처럼 표기한 것이 특이하다. 천문도(天文圖) 작성자 박물관 시대 조선시대후기 크기 66.5*64.5 등록번호 708 조회 2157 첨부파일 0 작성일 2019.10.23 천문도(天文圖)는 왕조의 권위의 표상으로, 고대 왕조는 천체 관측 결과를 규격화하여 성도(星圖)를 작성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고구려가 처음으로 천문도를 석각(石刻)하였다고 전해진다. 그 인본(印本)이 고려를 거쳐 조선까지 계승되었다. 또 고구려의 고분벽화의 일월성진도(日月星辰圖)에 의해서도 고구려 천문학의 성좌에 대한 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 즉 3선으로 원들을 이어 나타낸 성좌(星座)와 함께, 태양을 동쪽에, 달을 서쪽에, 청룡 현무 백호 주작을 각기 4방위에 정확하게 그려놓았다는 것은 정확한 전체 관측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나타낸다.신라에는 효소왕 1년(692)에 도증(道證)이 당에서 가지고 온 천문도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백제인의 성좌에 대한 지식은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던 것으로 추측되나 역시 기록만이 전하고 있다. 고려시대의 천문학은 고려사(高麗史) 에 오윤부(伍允孚)가 천문도를 작성하였다는 기록이 있을 뿐이다. 평양성에 있었던 고구려 천문도석본의 인본(印本)은 고려에 계승되었다.천문도는 적도를 따라 12차(次)와 이에 대응하는 지역인 12분야(分野)에 따라 하늘의 형상을 늘어놓은 것이다. 북극을 중심으로 동그라미 안에 1464개의 별을 새겨 넣었으며 별자리마다 이름이 쓰여있다. 작은 원 안에는 24절기마다 저녁과 새벽에 남쪽에 위치하는 별자리가 있다. 북두칠성 등의 몇몇 별자리는 붉은 색으로 표시를 하였다 천문성수분야도(天文星數分野圖) 작성자 박물관 시대 조선시대후기 크기 39.5*33 등록번호 707 조회 1823 첨부파일 0 작성일 2019.10.23 조선시대에는 1395년(태조 4)에 새로 건국한 조선왕조의 권위를 내세우기 위하여 석각천문도를 만들었다. 이 천문도는 고구려의 천문도를 바탕으로 성도의 오차를 다시 관측하여 새로 작성한 것이다. 1687년(숙종 13)에 다시 새로운 석각천문도를 만들었으며, 1770년(영조 46)에 숙종조의 석각천문도와 같은 것을 목판으로 만들어 120매를 인쇄하여 배포하였다. 한편 17세기 말 서양의 천문도가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오게 되면서 서양식이 가미된 새로운 천문도가 제작되었다. 그중 영조18년(1742)에 제작된 신법천문도(新法天文圖)와 18세기의 혼천전도(渾天全圖), 1807년 황도중국합도(黃道中局合圖) 등이 대표적으로 여러 가지 이름의 관제 천문도가 인쇄, 보급되었다.천문성수분야도는 적도를 따라 12차(次)와 이에 대응하는 지역인 12분야(分野)에 따라 하늘의 형상을 늘어놓은 것이다. 사각과 원형의 도형 안에 팔괘를 늘어놓았으며, 그 바깥쪽에는 하늘의 방향에 따라 4방 28수의 성수를 늘어놓았다. 매우 간략하게 그린 천문도이다. 황도북항성도(黃道北恒星圖) 작성자 박물관 시대 1834년 크기 36.5*54.5 등록번호 346 조회 812 첨부파일 0 작성일 2019.10.23 명(明)나라 때 서양의 예수회 선교사들이 망원경과 천문서적을 가지고 와 동양과 서양의 천문도를 비교하는 작업을 시작하였다. 그 결과 동양의 전통적인 천문도에서 동양에서 관찰할 수 없는 남쪽의 별을 없애고, 그때까지 알지 못했던 남극에 가까운 별을 그려넣은 새로운 천문도를 제작하였다. 이런 천문도는 사신에 의해 우리 나라에도 들어오게 되었다. 조선의 관상감이 서양의 영향을 받아 만든 천문도는 신법천문도(新法天文圖)라고 불렀다. 이렇게 새로운 방식으로 만들어진 천문도에는 해와 달의 표면, 수성과 금성의 궤도 변화, 목성과 토성의 위성이 소개되어 있다. 또한 별의 밝기를 나타내는 등급을 표시하였다.황도남북항성도는 원래 독일인 쾨글러(Kogler. I., 戴進賢)가 1723년에 작성한 것으로 순조 34년(1834)에 김정호가 복각한 것이다. 황도북항성도와 황도남항성도의 두 쪽으로 되어 있는데 "도광갑오 태연재간(道光甲午 泰然齊重刊)"이라는 간기가 있다. 쾨글러가 작성한 300좌, 3083성의 대성표(大星表)를 영조 18년(1742)에 김태서와 안국빈이 중국에서 직접 배워 와 관상감에서 모사하여 만든 8폭 병풍의 신법천문도(新法天文圖) 가 있다. 이 황도남북항성도는 신법천문도 를 축소한 목판본이라고 할 수 있다. 황도 북극과 황도 남극을 중심으로 지름 31cm인 원 안에 따로 그렸다. 그 안에 별을 *표로 나태내고 등급을 一, 二, 三, 四, 五, 六氣(星雲)로 나누었다. 이 유물은 황도남북항성도 중 북항성도이다. 황도남항성도( 黃道南恒星圖 ) 작성자 박물관 시대 1834년 크기 36.5*54.5 등록번호 345 조회 988 첨부파일 0 작성일 2019.10.23 명(明)나라 때 서양의 예수회 선교사들이 망원경과 천문서적을 가지고 와 동양과 서양의 천문도를 비교하는 작업을 시작하였다. 그 결과 동양의 전통적인 천문도에서 동양에서 관찰할 수 없는 남쪽의 별을 없애고, 그때까지 알지 못했던 남극에 가까운 별을 그려넣은 새로운 천문도를 제작하였다. 이런 천문도는 사신에 의해 우리 나라에도 들어오게 되었다. 조선의 관상감이 서양의 영향을 받아 만든 천문도는 신법천문도(新法天文圖)라고 불렀다. 이렇게 새로운 방식으로 만들어진 천문도에는 해와 달의 표면, 수성과 금성의 궤도 변화, 목성과 토성의 위성이 소개되어 있다. 또한 별의 밝기를 나타내는 등급을 표시하였다.황도남북항성도는 원래 독일인 쾨글러(Kogler. I., 戴進賢)가 1723년에 작성한 것으로 순조 34년(1834)에 김정호가 복각한 것이다. 황도북항성도와 황도남항성도의 두 쪽으로 되어 있는데 "도광갑오 태연재중간(道光甲午 泰然齋重刊)"이라는 간기가 있다. 쾨글러가 작성한 300좌, 3083성의 대성표(大星表)를 영조 18년(1742)에 김태서와 안국빈이 중국에서 직접 배워 와 관상감에서 모사하여 만든 8폭 병풍의 신법천문도(新法天文圖) 가 있다. 이 황도남북항성도는 신법천문도 를 축소한 목판본이라고 할 수 있다. 황도 북극과 황도 남극을 중심으로 지름 31cm인 원 안에 따로 그렸다. 그 안에 별을 *표로 나태내고 등급을 一, 二, 三, 四, 五, 六氣(星雲)로 나누었다. 이 유물은 황도남북항성도 중 남항성도이다. 앙부일구(仰釜日晷 ) 작성자 박물관 시대 1713년 이후 추정 크기 24.2*11.9 등록번호 322 조회 2946 첨부파일 0 작성일 2019.10.23 '앙부일구(仰釜日晷)'는 앙부일영(仰釜日影)으로도 쓰며, 솥이 하늘을 바라보는 듯 한 모습을 한 해시계라는 의미이다. 1434년(세종 16) 장영실(蔣英實), 이천(李蕆), 이순지(李純之) 등이 왕명에 따라 처음 만들었으며, 그 해 10월 종묘 앞과 혜정교(惠政橋)에 각 1대씩 설치하였다. 그 후 조선 말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제작되어 궁궐과 관공서에 널리 보급되었다. 조선 초기에 제작된 앙부일구는 현재까지 알려진 사례가 없으며, 지금 남아있는 앙부일구의 경우, 북쪽방향(子)에 은상감으로 새긴 북극고 37도 39분 15초(北極高三十七度三十九分一十五秒) 라고 새긴 명문의 위도 값이 1713년(숙종 39) 이후 처음 사용된 사실이『국조역상고(國朝曆象考)』를 통해 확인되므로 제작시기 역시 1713년 이후로 추정된다. 국내 현존하는 앙부일구는 약 10점이 알려져 있으며, 비교조사를 통해 3개 소장처(국립고궁박물관, 국립경주박물관, 성신여대박물관)에 보관된 3점에 대해 2022년 2월 22일 보물(2022-3)로 지정하게 되었다. 앙부일구는 ①제작기법에서 시반의 시각선과 절기선, 지평면의 절기글자와 24방향 글자에 표현된 은상감 기법과 영침, 받침대(다리와 다리받침)에 적용된 리벳과 땜기법, 그리고 받침대에 시문된 용무늬, 구름장식, 거북머리 장식 등에서 뛰어난 조형미를 보이고 있어 숙련된 기술자가 제작한 최상급의 앙부일구로 판단된다는 점, ②현재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앙부일구는 약 10점으로 적은 편이며, 기 보물로 지정된 앙부일구가 받침대에 수평홈이 있는 점과 달리 이번에 조사된 앙부일구는 수평홈이 없이 장식적인 면이 강조된 새로운 양식의 희소한 유물에 해당된다는 점, ③태양의 그림자로 시간 뿐 만 아니라 날짜(절기)를 함께 파악할 수 있도록 한 독창성과 함께 조선시대 천문과학기술의 발전상과 애민정신을 엿 볼 수 있는 대표적 과학문화재라는 할 수 있다. 출처 : 문화재청 문화재검색 지구전후도( 地球前後圖 ) 작성자 박물관 시대 1834년 크기 88.2*42 등록번호 49 조회 2924 첨부파일 0 작성일 2019.10.23 명(明)나라 때 서양의 예수회 선교사들이 망원경과 천문서적을 가지고 와 동양과 서양의 천문도를 비교하는 작업을 시작하였다. 그 결과 동양의 전통적인 천문도에서 동양에서 관찰할 수 없는 남쪽의 별을 없애고, 그때까지 알지 못했던 남극에 가까운 별을 그려넣은 새로운 천문도를 제작하였다. 이런 천문도는 사신에 의해 우리 나라에도 들어오게 되었다. 조선의 관상감이 서양의 영향을 받아 만든 천문도는 신법천문도(新法天文圖)라고 불렀다. 이렇게 새로운 방식으로 만들어진 천문도에는 해와 달의 표면, 수성과 금성의 궤도 변화, 목성과 토성의 위성이 소개되어 있다. 또한 별의 밝기를 나타내는 등급을 표시하였다.혼천전도는 조선 후기에 작성된 목판인쇄 천문도이다. 천상열차분야지도의 전통적인 내용에 서양 천문도에서 받아들인 내용을 함께 담았다. 가운데 성좌를 그리고, 그 위쪽에는 칠정주천도(七政周天圖 : 해, 달, 토성, 목성, 화성, 금성, 수성의 망원경 관측도), 일월교식도(日月交食圖 : 일식과 월식의 원리를 나타낸 것), 24절기태양출입시각도(二十四節太陽出入時刻圖)가 있고, 아래쪽에는 24절신혼중성(二十四節晨昏中星), 칠정신도(七政新圖), 현망회삭도(弦望晦朔圖), 칠정고도(七政古圖)가 있다. 혼천전도는 망원경으로 관측한 칠정이 처음 소개된 천문도라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혼천전도( 渾天全圖 ) 작성자 박물관 시대 조선시대후기 크기 60.3*97.5 등록번호 44 조회 1611 첨부파일 0 작성일 2019.10.23 명(明)나라 때 서양의 예수회 선교사들이 망원경과 천문서적을 가지고 와 동양과 서양의 천문도를 비교하는 작업을 시작하였다. 그 결과 동양의 전통적인 천문도에서 동양에서 관찰할 수 없는 남쪽의 별을 없애고, 그때까지 알지 못했던 남극에 가까운 별을 그려넣은 새로운 천문도를 제작하였다. 이렇게 새로운 방식으로 만들어진 천문도에는 해와 달의 표면, 수성과 금성의 궤도 변화, 목성과 토성의 위성이 소개되어 있다. 또한 별의 밝기를 나타내는 등급을 표시하였다.황도중서합도는 장시성(江西省) 사람인 쉬차오쥔(徐朝俊)이 1807년(嘉慶 12)에 쾨글러의 황도총성도를 모사하고 해설을 붙인 신법천문도의 남쪽 하늘 부분이다. 위쪽의 제호(題號) 아래에는 붉은 글씨로 쓴 해설문이 있다. 동그라미 안에 모양이 다른 부호를 사용하여 별을 6개 등급과 기(氣)로 나누어 그렸다. 또 적도는 붉은색, 은하수는 파란색으로 칠했다. 처음 13 1 2 3 다음 페이지 끝